회의 이미지

저는 9년차 직장인인 30대 초반의 직장인입니다. 30대 초반을 몇번 썼다 지웠다 했는데, 33살이니까 30대 초반이라고 아직까지는 해도 괜찮겠습니다. 가끔 크고 작은 위기들이 오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회사 생활을 잘 이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오늘, 또 갑자기 퇴사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와서 그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갑자기, 불현듯 이런 말들은 사실 그동안 쌓여왔던 사건이나 감정들이 내가 인지하지 못한 채 증폭되는 경우에 하게 되는 일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조금 단순화 하고 곁가지들을 쳐내고자, 오늘은 퇴사를 고민하는 9년차 직장인의 갈대같은 마음을 써 보고자 합니다.

누군가 나의 직장생활을 묻는다면

퇴사를 하게 되는 시점이라면 저는, 제가 다닐 수 있는 최고의 직장에 다녔노라고, 가끔 힘들고 속상한 일들도 있었지만, 종종 보람을 느끼고, 보통은 즐거웠노라고 얘기를 할 듯 합니다. 지금의 회사는 제게 그런 회사이기 때문이에요. 연봉이 높진 않고, 잡플래닛이나 블라인드에서 많이 까이고 있는 회사이기는 합니다. 여기 다니는 구성원들은 이 회사가 최악이라고, 여기를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하는 분들도 많지요. 제게 최고의 직장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이제 구성원들도 적당히 익숙해져서 적당히 편하고요, 집 근처라 걸어서 10분이내에 쾌적한 출퇴근 환경을 보장합니다. 월급은 적은 편이지만 저는 월급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은 없어서, 어차피 월급쟁이 월급은 거기서 거기니까 큰 아쉬움은 없습니다. 워라밸은 바쁠 땐 바쁘지만 그렇지 않을 땐 나쁘지 않은 편. 야근을 거의 하지 않는(다만 하지 않기 위해 매우 노력해야 하는) 업무 환경이지요.

매일은 치열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잔잔한 모습을 하고 있는 저의 직장 생활입니다.

그런데, 그 잔잔한 것이.

그게 지루합니다. 그냥 이렇게 살면 살겠다 싶어요. 월급 받고, 주말에 맛난 거 먹고 놀러 다니면서, 그냥 이렇게 살아도 살아지겠다, 이렇게 살면 요 동네에서는 꽤 좋은 직장에 부모님 걱정 안 끼치고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겠구나 싶어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가끔씩, 그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는 겁니다. 퇴근하고 싶다를 입버릇처럼 달고 살면서, 매일 영혼 없이 회사로 발걸음을 옮기는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요. 

회사가 나에게 주는 혜택

그럼 이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얻는 혜택이 무엇이 있을지 한번 생각해봅니다.

  • 월급 300만원 
  • 각종 사회보장, 혜택(건강검진, 고용보험)
  • 대출을 위한 신용
  • 인간관계, 소속감

네가지 다 골고루 중요한 것들이네요. 

회사가 나에게로부터 갖고가는 것

그럼 이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소비하는 것, 내가 잃는 것은 무엇일까요

  • 일 8시간, 주 40시간
  • 소진, 스트레스

소진과 스트레스는 아주 큰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인내력이 강한 사람이라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절 갉아먹는 스트레스를 인지하지 못할 수는 있어요. 다만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구성원도 무난무난하고, 가끔 짜증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사회생활의 기본값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큰 건, 하루의 8시간입니다. 잠자는 시간 빼면 하루의 50%를 회사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공공기관에 다니고 있어 유연근무, 단축근무, 이런것은 없고요, 꼼짝없이 8시간을 일이 있든 없든 회사 사무실 내에 앉아있어야 합니다. 

손익비교

회사가 나에게 주는 혜택과, 나에게서 갖고 가는 것들을 비교해봅니다. 경제적인 부분과 나의 시간을 바꾸는 과정이네요.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만약 퇴사를 한다면, 월급과 사회보장은 다른 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하는 부업의 총 금액은 월급과 사회보장등을 합친 것에 미치진 않지만, 시급은 훨씬 높은 편이니까요. 하루에 4~5시간 정도 일하고 회사에서 받는 월급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게 노력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출과 인간관계, 소속감은 어찌할 도리가 없네요. 퇴사를 하게 된다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일겁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일 8시간, 스트레스 부분과 상계가 되는 것이냐, 한다면요. 이건 사람바이사람이겠지만, 굳이 지금이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당장 뛰쳐나가야 할 이유는 없겠네요.

영리하게, 계산적으로만 보자면 회사에 있을 때 대출 받고, 나와서 월급만큼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직은 조금 때를 기다려 보는 것으로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못 참겠으면

그럼 위에 나온 계산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어느날 너무 힘들고 못 참겠으면, 내가 느끼지 못했던 스트레스가 어느날 한 순간 나를 잠식해온다면, 그 땐 뒤도 돌아보지 말고 퇴사를 할겁니다. 내 생계를 유지할 만큼은 아르바이트로 벌 수 있고요, 벌지 않는다고 당장 큰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가장 우선순위로 놓고 생각해야 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하루에 1달러, 월 30달러로 사는 실험을 해 보고,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싶어서, 월 30달러 벌긴 쉬우니까, 그 이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고 하죠. 제가 일론 머스크처럼 될 필욘 없지만, 제가 손에 쥔 작은 것들을 놓지 못해 보이지 않는 사회의 관념에 끌려다니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때를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충실히 살아가겠습니다.

 

+ Recent posts